‘사사(辭寫)데이’. ‘사양할 사(辭)’와 ‘복사할 사(寫)’를 합쳐 만든 이름이다. ‘불법복제를 거절하는 날’쯤 되겠다. 이름에 맞춰 4월4일을 기념일로 잡았다. 벌써 5년째다.
2006년 사무용소프트웨어연합(BSA)이 4월4일을 ‘반불법복제의 날’로 정했을 때만 해도 국내 소프트웨어(SW) 불법복제를 줄이고 지적재산권을 보호하자는 선언적 의미가 짙었다. 개그맨 박명수씨를 홍보대사로 위촉하고 불법복제 방지 캠페인 ‘탈날라’를 띄우는 등 SW 불법복제 심각성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지난해부터는 SW를 넘어 영화나 음악, 자동차와 의류 등 산업 전반에 걸쳐 불법복제와 모조품 근절을 위한 캠페인으로 영역을 넓혔다.
국내 SW 불법복제율도 차츰 줄어드는 모양새다. BSA가 전문 조사기관에 의뢰해 발간된 보고서를 보자. 10년 전인 2000년만 해도 국내 SW 불법 복제율은 56%였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한국을 필리핀, 이집트 등과 더불어 ‘지적재산권 침해 우선 감시 대상국’으로 지정했다. 2004년 들어 ‘감시대상국’으로 한 단계 낮춰졌고, 2009년부터 올해까지는 3년 연속 지적재산권 침해국에서 제외됐다.
2010년 BSA 보고서 기준으로 국내 SW 불법복제율은 41%로, 조사대상 OECD 31개국 평균치인 43%보다 낮아졌다. BSA는 이를 ‘한국이 SW 지적재산권 침해국에서 지적재산권 보호국으로 전환된 것’이라며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BSA는 내친 김에 한 발 더 나아갔다. 앞으로 10년 안에 SW 불법복제율을 미국·일본 수준인 20%대로 떨어뜨리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올해 4월4일 ‘사사데이’를 맞아 ‘소프트웨어 저작권 비전 2020′ 선포식도 가졌다. 국회 문방위 소속 의원과 여러 SW 저작권 단체 대표, 글로벌 SW 기업 한국법인 대표 등이 행사장을 채웠다. 국내 SW 업체들의 저작권 보호 활동에 앞장서는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SPC)도 가세했다. 5년 동안 SW 불법복제 근절 홍보대사로 활동한 박명수씨에게 감사패를 증정하고, 어린이 합창단이 나와 ‘불법복제 싫어요’를 입 모아 노래하기도 했다.
SW 불법복제가 SW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이적행위’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제 값 치르지 않고 ‘공짜’를 찾아 헤매는 ‘어둠의 이용자’를 옹호하고픈 마음도 없다. ‘이용자들이 사지 않는데 어떻게 SW 산업이 발전하겠느냐’란 항변에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따로 있다.
지식경제부가 올해 2월 내놓은 ‘2011년도 SW산업 육성대책’ 자료를 보자. 올해 전세계 SW 시장 규모는 1조572억달러, 우리돈으로 약 1159조원 규모다. 이 가운데 패키지SW는 3212억원 규모로, 전체의 30.3%를 차지할 전망이다. IT 서비스 분야가 전체의 56.4%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임베디드SW 분야가 나머지 13.3%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불법복제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패키지SW 분야는 마이크로소프트나 IBM, 오라클 같은 글로벌 기업이 국내 시장의 64.4%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공공영역 처럼 외국 기업들이 진입하기 어려운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지만, 그나마도 저가 출혈 경쟁으로 수익성이 높지 않은 편이다. 제대로 된 기술 인력을 만들기도, 찾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이는 악순환 고리를 만들어낸다. 쓸 만 한 인력이 제때 수혈되지 못하면 기술력·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수익성도 덩달아 악화되고→연구개발에 투자할 여력이 없고 제대로 처우를 보상할 수 없게 되고→우수 인력이 이탈해 경쟁력이 더욱 떨어지는 식이다.
문제를 푸는 고리도 여기에 있다. SW 개발자 처우를 제대로 보상하는 방안을 마련해 우수 인력이 SW 업계로 들어와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SW와 서비스가 융합되는 ‘웹소프트웨어’ 시대에 전통적인 패키지 방식 대신 어떻게 새로운 SW·서비스·유통망을 확보할 것인가. 모바일과 가전기기로 확산되는 SW 시장에 어떻게 대응하고 경쟁력을 확보할 것인가. 쌓인 숙제가 적잖은 현실이다.
SW 불법복제가 진정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면, 불법복제를 줄일 보다 근본적인 ‘대안’을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SW 없인 산업 발전 없다’거나 ‘범 사회적 약속이 필요하다’라는 구호만으로 SW 불법복제가 줄어들 지는 의문이다. 전통 패키지SW와 IT 서비스를 구분해 세밀하게 시장에 접근하는 전략도 요구되는 시점이다. ‘세계시장 점유율 1.8%, 패키지SW 시장에선 1%에 불과한 국내 SW 시장 점유율’을 걱정한다면 SW 불법복제를 줄이는 것 못지 않게 이같은 근본 숙제에 대한 고민과 해법들을 머리 맞대고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국내 소프트웨어 불법복제를 10%만 줄여도 약 2만개의 일자리 창출은 물론, 3조원 가량의 GDP가 발생하는 등 그 경제적 영향력은 매우 크다.” SW 불법복제 근절 효과를 설명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통계다. 3년이 넘도록 이 통계는 토씨 하나 바뀌지 않고 반복되고 있다. SW 산업이 그토록 예측하기 쉽고 변화가 적은 시장일까. ‘저작권 보호’를 외치는 협회는 제자리걸음하는 통계 만큼이나 SW 산업 패러다임에 제대로 발맞추지 못하는 건 아닐까. SW 산업 발전을 외치는 목소리에 아쉬움이 묻어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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